베를린 철도삼각지 공원
글: 고 정 희
베를린 중심부 금싸라기 땅 약 31.5 헥타르를 차지하고 있는 글라이스드라이엑 공원 (((원명칭은 Park am Gleisdreieck이지만 발음이 너무 낯선 까닭에 편의상 이하 철도삼각지 공원으로 표기함)))은 2013년에 오픈 한 뒤 베를린의 가장 중요한 공원으로 빠르게 부상했다. 이는 이 공원이 탄생하기까지 삼 십 여 년이란 긴 시간이 소요되었고 시민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시민과 관, 설계자들 사이의 중재 역할을 맡아 진땀께나 흘렸던 조경가 티스 슈뢰더는 “공원설계공모 역사상 이런 차원의 시민 참여는 여태 없었다.”고 증언한다.
범사회적으로 벌어진 토론 과정에서 공원의 패러다임이 수차례 바뀌다가 “21세기형의 공원”으로 마무리 되었다. 철도삼각지 공원의 역사는 베를린 시민들의 민주적 참여의 성장사를 대변할 뿐 아니라 베를린 녹색당 결성을 부추겼고 도시자연, 제4의 자연, 생태잡석밭 등 새로운 생태키워드를 창조했다.
철도삼각지Gleisdreieck
이곳은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화물역으로 이용되었었다. 1945년 역이 폐쇄되고 나서 방치된 상태였고 서서히 폐허가 되어갔다. 당시 서베를린은 연합군이 점령했으므로 베를린 시는 철도부지 이용권이 없었다. 부지의 일부는 동베를린에 속했으며 부지운영권은 모두 동베를린의 철도공사가 소유했다. 한편 서베를린의 부동산 회사에서 구 독일제국의 재산관리권을 보유하고 있는 등 소유관계가 불분명한 관계로 도심에 속한 “금싸라기” 땅이었음에도 개발사업이 용이하지 않았다. 나중에 통일되면서 이 관계가 정리되어 베를린 시 소유지가 되었다.
제4의 자연
그 사이 부지는 백 년 간의 잠에 빠져들어 갔고 식물들이 폐허를 다시 점령하여 독특한 자연이 형성되었다. 여기에 베를린 공대 환경생태학과 코바릭 교수가 제4의 자연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Natur der vierten Art. 제1자연은 문자 그대로 자연 그 자체, 제2자연은 경작지로 이루어진 반인위적 자연, 제3자연은 정원, 공원 등 인위적 자연, 제4자연은 폐산업부지 등을 다시 점령하는 자연을 말한다. )))
1970년대 말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우연히 철조망 틈으로 그 안에 형성된 새로운 생태현상을 목격. 소문이 퍼지면서 새롭게 나타난 자연을 지키기 위해 시민연대가 결성되고 고속도로 건설을 계획한 시 당국과 필사적인 투쟁을 시작했다.
결론을 내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통일이 되었고 새로운 국면이 나타났다.
포츠다머플라츠 건설 공사와 얽히다
포츠다머 플라츠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도시개발사업의 자연침해조정 조치로 적절한 부지를 선정하여 녹화사업을 실시해야 했으므로 바로 옆에 위치한 철도삼각지가 안성맞춤의 공간으로 새삼 인식되었다. 2001년부터 시작된 공모 절차도 시민연대와의 씨름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마침내 2006년 아틀리에 로이들 출품작이 선발되어 2008년부터 철도삼각지 공원 조성이 시작되었다. 시민들의 뜻을 십분 받아들여 자연발생적 유휴지 식생과 철도 레일 및 철도 시설의 일부를 그대로 유지하여 공원 디자인에 수렴하여 도시자연의 형성을 추구하는 한편 넓은 잔디밭의 “열린 풍경”을 만들어 시민들이 활동공간을 널찍하게 제공했다.
시민 참여
철도삼각지공원 시민 참여의 긴 역사는 뒤에 별도로 상세히 서술했다. 2006년 우여곡절 끝에 당선작을 얻어내고 그동안서로 싸우는 사이 정이 들었는지 조경가들, 관 책임자들, 시민연대 일원들은 대체로 만족했고 화해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독일조경학회장이며 현상설계 심사위원이었던 안드레아 겝하르트는 “여태껏 이토록 적극적이고 진한 시민참여는 경험해 본 적이 없다. 특히 시민들과 함께 한 주말 설계 워크숍은 모든 참가자들이 서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설계자들은 전문가의 관점에서 왜 그렇게 설계할 수 밖에 없는지 설명할 수 있었고 역으로 향후 공원을 이용하게 될 시민들의 의견을 사전에 수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런 워크숍이 없었다면 설계의 방향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고 회고했다.
1974년 시민연대 일호를 창시한 터줏대감 노버르트 라인랜더는 “야생적인, 정돈되지 않은 자연을 보존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도를 설계자들에게 충분히 전달했다.”고 만족해 했다. 23년 동안 시민 연대에서 활동했던 사회학자 마이어-렌스하우젠 박사는 공원이 자라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다며 설계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공원 컨셉과 구조
종합컨셉: “ 두 가지 속도의 공원 – 빠르게 달리기, 느리게 휴식하기”
철도삼각지공원과 함께 새로운 유형의 공원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남북으로 달리는 IC 철길에 의해 크게 두 구간으로 나뉜다. 철길 동쪽의 이스트파크는 도시자연이 천천히 회복하는 곳, 서쪽의 웨스트파크는 사람들이 빠르게 달리는 곳,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곳으로 서로 대조적 성격을 띤다.
컨셉의 가장 큰 핵심이 되는 것은 “다양한 움직임, 즉 스포츠와 놀이, 자전거 출근길, 휴양공간, 자연공간으로서의 다원적인 목적을 모두 충족하는 것이다. 각 부분 공간의 개별적 컨셉 역시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예를 들어 다문화 커뮤니티 가든 ”장미향기Rosenduft“나 어려서 놀던 뒷동산을 연상케하는 자연체험정원 등의 개념들이 수렴되었다.
이용자 층의 다양한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결과 호응이 대단히 긍정적이다. 이는 공원 컨셉을 개발하기 이전에 시민들과 집중적인 대화와 토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북 녹지시스템 및 유럽 자전거 길:
이스트파크와 웨스트파크 두 구간을 가르는 철길을 따라 자전거 길이 마련되었다. 이 자전거 길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는 인구가 날로 증가하고 있어 일상 속에 융화된 공원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스트파크:
이스트파크는 자연발생한 새로운 자연의 비율이 높은 곳이다. 중앙의 행사용 넓은 잔디밭에서 콘서트, 연극, 방송 기타 예술 행사들이 활발하게 개최되고 있으며 약 1300 평방미터 규모의 스케이터 장이 조성되어 있다. 베를린에서 가장 큰 스케이터장이다. 스케이터들이 설계에 직접 참가하였으며 슬라이드, 그린즈, 플립 등의 묘기가 모두 가능하도록 조언했다. 길게 달리고 싶은 스케이터들을 위해서 아스팔트길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웨스트파크:
웨스트파크의 특징은 시원하게 연결된 길과 녹지 및 전철 교량이다. 멀티기능의 레포츠 장이 마련되어 있고 휴식용 잔디밭, 목재 테라스와 모래밭이 특히 방문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다.
인접한 주말정원단지와 협업하여 “정원 속의 정원”이라는 프로젝트를 발족했으며 장터가 있고 작은 카페가 있다.
스포츠장을 만들기 위해 청소년들, 어린이들과 2회의 워크숍을 가졌다. 청소년들이 제시한 아이디어가 설계에 수렴되어 전철 교량 하부에 넓은 스포츠장을 조성했다.
철도역사 유물: 글라이스드라이엑에서 가장 매력있는 요소는 단연 공원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레일을 비롯한 많은 철도시설들이다. 대부분의 시설물들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상태에서 디자인에 수렴하였다
숲: 오래된 나무들로 이루어진 수림은 웨스트파크 보다는 이스트파크에 많이 잔재해 있다. 이들은 남북으로 연결되는 레일을 따라 자연발생한 <제4의 자연>이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용에서 제외했으며 특히 가치높은 비오톱은 울타리를 둘러 출입을 금하고 있다. 다만 두 개의 산책로를 통해 숲을 통과할 수 있도록 했다.
운동과 놀이: 운동과 놀이는 글라이스드라이엑의 중요한 테마다. 새벽의 요가 모임으로부터 시작해서 탁구, 각종 공놀이, 베드민턴 등의 자유로운 운동도 가능하지만 자전거 길을 따라 양변에 많은 스포츠장과 놀이터가 마련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취향에 맞는 운동을 할 수 있다.
생태와 관리:
도심 속의 공원으로서 많은 이용객으로 붐비고 있으나 처음부터 생태적 다양성과 그에 합당한 관리컨셉을 수립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이를 위해
- 철저한 사전 현황조사
- 계획과 설계에 반영
- 준공 후 생태 모니터링 시작
- 별도의 관리컨셉 개발
철도삼각지공원은 현재 베를린 도시녹지컨셉의 ‘교차로’ 역할을 하는 곳으로서 남북 녹지축의 중요한 고리를 연결시킨다. 즉, 북의 정부청사구역 → 슈프레보겐파크 → 티어가르텐 → 포츠다머플라츠→ 글라이스드라이엑 공원 → 쉐네베르거 리본 → 남쪽의 자연공원 쥐드겔렌데로 이어진다.
마음만 먹으면 쥐드겔렌데 자연공원으로부터 정부청사구역까지 녹지를 따라 도보행진이 가능하며 걷는 속도에 따라 두 세 시간 소요된다. 출발지점을 자연공원으로 잡는 것이 유리하다. 마지막에 도심의 포츠나머플라츠에서 아웃하면 목축임 다리쉼 할 수 있는 카페와 식당이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공원 기본 정보
도시 | 베를린 |
녹지유형 | 공공녹지 및 휴양녹지 |
규모 | 총면적 약 26ha: 이스트파크: 약 17ha: 웨스트파크: 약 9 ha |
조성 연도 | 공사기간 2008-2013: 이스트파크: 2011년 9월 오픈. 웨스트파크: 2013년 5월 오픈 |
발주 | 베를린시 도시개발환경부, I C국 (오픈스페이스 계획, 도시녹지), 그린 베를린 재단 Grün Berlin Stiftung에서위탁 발주. |
메니지멘트, 관리 | 그린 베를린 사 Grün Berlin GmbH |
전체 기본 구상 및 설계 | 아틀리에 로이들 (조경 · 도시설계)Atelier Loidl Landschaftsarchitekten und Stadtplaner, Berlin |
최종 도면

역사 – 6막의 대하극
글라이스드라이엑 공원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역사 자체가 공원의 일부이므로 파란만장한 삼각지의 이력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1막: 철과 콘크리트 세상
1841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황제가 철도광이어서 좀 심하게 많은 철도 공사를 지시했다. 예를 들어 포츠다머역과 안할터역이 불과 650미터 간격을 두고 각각 건설되어 이 두 역을 향하는 수많은 철길이 서로 교차하며 삼각지가 형성되었다. 중간에 운하를 통과해야 했으므로 3미터 높이로 둑을 쌓고 교량을 세웠다. 당시 레일이 마치 요즘 컴퓨터 케이블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1900년 이 무렵에 건설된 전철역과 교량. 삼각지 형태가 잡혔다. 지금도 공원 내에 여러 개의 레일이 나란히 진행되다가 서로 여러 번 교차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차 대전까지 이곳은 “철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세상” 이었다 당시 산업 기술의 발달을 환호하던 독일인들은 철도삼각지를 “세상의 심장” 이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 했다.
1945년 세계제2차 대전 때 연합군의 집중 폭격으로 심하게 파괴되었다. 그리고 잊혀졌다.
- 1900년경의 “세상의 심장” 철도삼각지 전경을 보여주는 그림 엽서. 출처: SDTB Archive.
2막: 잊혀진 세상
1951년: 철도역 동베를린으로 넘어 감. 철거와 방치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후 연결되지 못하는 철길이 쓸모가 없어져 철도부지를 그대로 방치
~ 1980년: “철로 이루어진 세상의 심장”을 자연이 다시 정복함
1980년: 식물생태조사 실시 한 결과 약 413종의 식물 확인. “도시 자연의 기적”으로 베를린이 떠들썩했다.
1983년: 동물조사. 약 10종의 포유류와 112종의 나비 확인

“철로 이루어진 세상의 심장”을 자연이 다시 정복. 사진: © Konstantin Börner
3막: 시민의 힘
한편 베를린 시에서는 철도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베를린을 동서남북으로 연결하는 고속도로망을 계획했다. 여러 개의 터널이 포함된 교통계획이 토지이용계획에 수렴되고 의회에서 결의했다. 이에 성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고 격렬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1965~1972년: 베를린 시에서 수립한 고속도로 계획을 시의회에서 철없이 통과 시켰다.
1972~1974년: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교통정책 시민코미티> 결성하고 자전거 시위를 시작했다. 이 시위가 동기가 되어 반 자동차 움직임도 태동했다. 교통계획에 의거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구마다 시민연대가 결성되었으며 특히 기존 주말정원의 철거 위기가 더 큰 저항으로 이어졌다. 쉐네베르거 구의 주민들을 중심으로 나중에 유명해 질 <서구간 교차로 반대 연대> 결성. 고속도로 건설로 이전해야 되는 어린이 놀이터를 지키기 위하여 시작되었다.
1974년: 교차로 설계 공모 실시. 시민연대에서 출품한 것이 공교롭게도 1등에 당선했다. 교차로를 지하로 넣고 지상에 공원을 조성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주지할 것은 시민연대 구성원이다. 조경학과 학생, 환경생태학과 학생이 대거 참여하였고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주동이 되었었다.
1976년: 시민연대에서 224 페이지에 달하는 “교통계획 블랙북” 발간. 6천부를 찍었는데 순간 매진되었다. 이후 부속 연대들이 속속 출현했고 시에서 교차로를 다른 구역으로 옮겨 설계하면 그 구역에 바로 연대가 결성되었다.
1978년: 시민연대에서 “녹지연계시스템”을 개발하여 발표했다. 이때 1920년대 건축가 마틴 바그너가 한 말이 새삼 모토가 되었다. “도시녹지에 대한 투쟁은 1평방미터에 대한 싸움이며 위치와 형태에 대한 분쟁이다.”
이 무렵 철도 부지를 철통같이 애워싼 담장에 난 구멍을 기웃거리던 시민연대 구성원들이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태현상을 발견한다. 시민연대에서 “ 녹색 교차로” 라는 주제로 현상공모 실시. 전문가 뿐 아니라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오픈 공모였다. 그 결과 그림 30점, 포스터, 사진, 시 30점, 6개의 단편소설, 팝송 20개, 동영상 1점 등이 제출되었다. 재즈 카페에서 파티를 곁들인 전시회, 음악회 개최하고 고속도로 계획된 구간에서 자라는 사과나무를 수확하여 베를린 시청앞에서 행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과 이벤트”를 벌인다.
1980년: 시민연대 구성원을 중심으로 녹색당 결성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1990년 통일까지 시민연대의 맹활약이 지속되었다. 글라이스드라이엑을 사실상 점령하고 서명운동, 홍보센터 설치, 산책이벤트, 피크닉, 그릴 파티 등을 열었으며 나무 지킴이 결성, 각종 전시회 개최, 교통계획절차에 적극적 참여에서 법정 소송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글라이스드라이엑에 고속도로 건설을 막아냈다.
4막: 통일 – 포츠다머플라츠 재구성과 철도삼각지의 운명
1989년: 장벽이 무너지고 불과 3개월 후 다이뮬러–벤츠 사가 베를린 중심부 포츠다머 플라츠 (당시에는 아직 폐허였음) 에 6만 2천 평방미터의 오피스 구역을 세우겠다고 선언. 이로써 포츠다머 플라츠 재구성 프로젝트가 시작됨.
1994년: 독일철도청이 모든 철도부지를 거둬들이고 일부 매각 시작. 베를린 시가 발 빠르게 반응하여 철도청과 계약을 맺고 삼각지 땅을 매각하지 않고 공원으로 쓸 수 있도록 이용권을 얻었으며 그 대가로 공원 외곽에 주택 개발 권리를 부여했다. 반대 의견도 많았으나 전화위복으로 부지 주변에 모던한 주택을 건설함으로써 오히려 공원이 활성화될 수 있고 포츠다머플라츠 개발과 글라이스드라이엑 외곽 주택개발로 인한 자연침해보상책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는 비용이 마련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5막: 21세기 공원으로 가는 멀고 먼 길
1991년: 여러 시민연대들이 모여서 철독삼각지 동호회 결성. 여기서 포츠다머 플라츠 등의 신도시 지구단위계획에 대해 이의 소송. 보상면적이 너무 작게 책정되었으며 법적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러나 패소.
1997년: 시당국에서 “시민연대들의 지칠 줄 모르는 관심과 성의를 인정하여 사상 처음으로 시민연대와 함께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 해 보인다”고 발표.
1999년: 해당 구청에서 지구단위계획 초안 발표회 청문회 개최. 계획에 대해 대단히 뜨겁게 찬반 토론 후 철도삼각지 동호회를 비롯 환경연대, 등 모두 8개의 단체가 모여 철도삼각지 워크그룹 결성 – 여기서 공동으로 대안 수립. “세계문화정원”이라는 컨셉 발표
~ 2005년: 별 진척 없이 줄다리기 계속
2005년 워크그룹에서 흥미로운 컨셉 제시. “21세기의 공원은 어떤 것일까. 30만 명이 이용할 수 있는 잔디밭? 공원녹지과에서 가꾸고 다듬어서 시민들에게 선물하는 것?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해 볼 때 이런 공원들은 이제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다양하고 다원적인 풍경이어야 한다. 역사적 흔적이 간직되고 기존의 생태적 다양성을 문화적 다양성으로 보완한 곳이어야 한다. 시민들이 (이용자들이) 모두를 위해서 각자 자신들의 공간을 책임져야 한다. 자연체험과 모험, 다양한 문화들이 만나는 장소, 예술적 터치 등등. 시민들이 공원의 지속적인 관리와 운영을 직접 떠맡아야 한다. 그리하여 예산부족으로 관리가 부실한 공원이 되어서는 안된다. 등등”
2005년 3월 20일 이스트파크의 일부를 임시 개방, 주민들이 나무상자와 꽃, 채소를 실어다가 임시 텃밭 조성.
예술가들이 나타나 주 1회 조각워크숍 개최.
주부들은 허브화단 조성 등등 각자 취향과 관심에 따라 자리 잡음.
6막: 설계현상공모
현상공모 1, 2단계 사이에 1차 통과한 설계작 전시회에서 심사위원들과 시민들 사이에 불꽃 튀는 토론이 벌어짐.
2006년 최종 심사에서 아틀리에 로이들의 출품작, 베를린 “녹색 휴식” 으로 낙찰. 위의 공원기본정보 및 최종 도면 참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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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SPACE MAGAZINE 2024/21세기형 공원/베를린 철도삼각지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