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빈곤의 얼굴을 그린 베를린의 양심 케테 콜비츠(1867–1945)는 거창한 수사를 믿지 않았다. 대신 검고 하얀 면, 굵은 선, 무엇보다 손과 얼굴의 제스처로 세상의 고통을 말하게 했다. 전쟁과 빈곤, 애도와 연대가 그의 화면에서 한데 얽힌다. 베를린은 그 삶과 작품의 무대였고, 오늘도 도시 곳곳에서 콜비츠의 흔적을 마주치게 된다. 콜비츠가 그렸던 도시의 초상은 여전할까?

콜비츠의 궤적은 프렌츨라우어 베르크에서 시작해 샬로텐부르크로 이어진다. 결혼 직후부터 50년 넘게 살았던 동네가 바로 지금의 콜비츠플라츠 일대다. 지금은 소위 말하는 젠트리피케이션 덕에 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구역. 케테 콜비츠가 살던 시절엔 빈곤한 노동자들의 구역이었다. 남편 카를의 병원 대기실에서 만난 얼굴들을 판과 종이 위로 옮겼다. 노동자·여성·아이들의 삶이 도시의 초상이 되었다.

지금 광장 한가운데에는 조각가 구스타프 자이츠의 콜비츠 좌상이 있다. 아이들이 기어오르고, 주민들이 잠시 등을 기대는 그 동상은 이 동네의 생활감과 잘 맞닿아 있다.

1919년, 그는 베를린 예술아카데미에서 여성으로서 제도 내부의 최고 레벨에 도달한다. 후학을 가르치고 심사와 전시에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1933년 나치 집권과 함께 강요된 퇴진을 겪는다. 개인사이기도 하지만 베를린 문화사가 심하게 흔들리던 시절. 그녀의 삶을 통해 그 단면을 읽을 수 있다. 나치로 인해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한 예술가, 문인 들이 대체 얼마나 될까? (다음 포스트에서 알아 볼 예정)

베를린 시가지 운터덴린덴에 있는 노이에 바헤(Neue Wache) 라는 작은 건물을 반드시 찾아 봄직하다. 옛날 프로이센의 경비였던 곳에 지금 한 어머니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피에타’로 자주 불리는 케테의 조각〈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Mutter mit totem Sohn). 네모난 광 안에 떨어지는 천창의 빛, 돌처럼 굳은 어머니와 아이—말 대신 침묵이 울린다. 누구나 무료로 들어가 마주할 수 있는, 베를린의 가장 숙연한 곳이다.

케테 콜비츠 미술관 베를린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Mutter mit totem Sohn). 피에타라고 더 널리 알려졌다. 사진: 고정희
케테 콜비츠 작품.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Mutter mit totem Sohn). 피에타라고 더 널리 알려졌다. 사진: 고정희

작품을 보려면 전시를 보려면 이제 샬로텐부르크 궁전으로 가면 된다. 케테 콜비츠 미술관 베를린이 2022년에 이곳으로 이전했다. 쿠담 근처 Fasanenstraße 24의 아늑한 옛 공간은 한 시대를 상징했지만, 새 보금자리에서 상설·기획전을 이어가며 자료와 교육 프로그램을 확장하는 중이다. (지도에 두 주소 모두 표시했다.) 지금 그 주소에는 케테를 떠나 보낸 문학관Literaturhaus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마지막 좌표는 프리드리히스펠데 중앙묘지. 이른바 ‘사회주의자 묘역’으로 알려진 곳으로, 콜비츠의 가족 묘가 이곳에 있다. 베를린의 정치·사회사가 중첩된 넓은 묘지 숲을 걷다 보면, 그의 작품이 낳은 애도의 윤리가 도시의 기억으로 어떻게 편입됐는지 체감하게 된다.

콜비츠를 따라 걷는 베를린은 결국 이런 문장으로 수렴한다. 구호보다 힘찬 이미지의 함성: 손과 손이 만나는 장면, 품에 안긴 아이, 무릎을 꿇은 부모—그 간결한 형상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질문을 던진다. 누구를 보호할 것인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방문 포인트 요약 (지도에 모두 표시)

  • Käthe-Kollwitz-Museum Berlin (현 위치): Spandauer Damm 10, Charlottenburg. 2022년 궁전단지 Theaterbau로 이전. Käthe-Kollwitz-Museum Berlin
  • Käthe-Kollwitz-Museum Berlin (옛 위치): Fasanenstraße 24, Ku’damm 근처. 1986–2022. Käthe-Kollwitz-Museum Berlin+1
  • Kollwitzplatz & 구스타프 자이츠 좌상: 프렌츨라우어 베르크의 생활사 중심. Wikipedia
  • Neue Wache: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 상설 전시. Wikipedia+1
  • Zentralfriedhof Friedrichsfelde: 콜비츠 가족 묘.